화이트 리버 × 미친존재감

『미친존재감: 사라졌던 미친 공간이 돌아왔다』
책 출판 과정 기록

창작 기간: 2024년 2월 6일 ~ 2025년 12월 13일
긴 시간, 깊은 산책
손성연

선미와 함께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미친존재 두 명이 만나 질질 새는 틈새를 막아보려고 애썼던 이 과정이 바로 돌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드 어사일럼》1) 연습 현장에 선미가 놀러왔다. 선미는 [오늘의 느낌]2)&[미친 교환일기]3)를 할 때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운 점을 솔직히 얘기해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두고 두고 그 일이 마음에 박혔다. 그건 선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 또한 겪고 있는 문제이며, 이 문제는 미친존재가 경험하는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했다. 선미는 게으르지 않다. 선미는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4)를 복용하다보니 미치지 않은 존재에 비해 더 많은 체력을 소비하게 된다. 선미는 무책임하지 않다. 선미는 과하게 많은 업무를 혼자서 하고 있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ADHD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그중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 과잉된 생각이다. 생각이 끊임없이 펼쳐진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한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선미는 선미스럽게 잘해내고 있다. 선미는 미친존재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중이다. 그 가능성은 넓고 어지럽고 산만하고 더럽다.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돌봄이 있다면 사람덕후 선미가 좋아하는 일을 덜 힘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선미가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연락을 했다. 민조가 쓴 《미친식당》 가오픈 리뷰5)를 읽고 나서 감동받았다고 했다. (민조 고마워요) 선미는 성인 ADHD와 기분장애가 있다고 했다. ‘이제껏 게으르고 책임감 없고 늘 도망친다는 얘기만 들었던 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어요.’라고 했다. ‘잉? 그거 난데? 평생을 도망치고 미성숙한 짓거리를 해대고 상처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허술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못난 짓을 지금도 하는데...’ (선미는 내급이 아니다. 선미는 다정해)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 (물론 다르다. ADHD는 정말 다양해서 삶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내 고통과 재미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우리는 2024년 2월 6일에 카페에서 만났다. 의사 이야기, 약물 이야기, ADHD 이야기, 기획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했다. 독립출판사 화이트 리버 대표 선미는 정식으로 예치페르체시(egyperecs)6) A4 3~4매 정도 분량의 글을 청탁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도 된다고 말했다. ‘머징? 나 좀 성공한 인생인 건가? 헷’

그 충만한 기분을 누릴 새도 없이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다. 어떤 글을 써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쓰고 싶은 말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선미에게 도와달라고 징징거렸다. 선미랑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목차를 작성했다. 드디어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글을 쓰는게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일하던 곳에서 눈치를 줬다. 더 중요한 건 글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다시 선미에게 연락을 해서 쓰다가 포기한 글을 모아서 보냈다. 아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피드백을 해줬다. 이번에는 글이 점점 증식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글을 쓸 때마다 모든 게 커지고 넓어지고 펼쳐진다. ADHD의 세계는 이런 식으로 내 삶에 깊은 영향을 준다) 정해진 원고 분량을 거의 3배를 넘겨버렸다. 선미는 원고를 읽고 나서 비용을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네!?” 선미는 화이트 리버의 목표와 계획을 나의 삶에 맞춰 바꿔줬다. ‘이보다 큰 돌봄이 있을까? 쉽지 않은 건데 이거.’

선미는 혼자서 출판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선미의 친동생인 연주가 도와주고 있는데... 연주7)는 천재 중의 천재다. 선미도 천재다) (옆길로 샜는데 없던 길도 만드는 게 ADHD다, ‘다시 돌아와, 성연아.’) 선미는 혼자서 디자인 외주 작업을 해야 된다. 선미에게 눈치 없이 “디자인으로 돈 많이 버나요?”라고 물어봤다. (허탈한 웃음) “그랬으면 좋겠어요.” 화이트 리버 출판사를 운영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기획, 미팅, 행정, 홍보, 워크숍 기획/제작 등등, 이 업무들 사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과정들이 숨겨져 있을까. ADHD에게 가혹한 환경이다. ADHD는 정말 열심히 노력해도 실수하고 누락되고 남겨지는 일이 생긴다. 그 노력 때문에 무너지고 아프고 쓰러진다. 선미는 곧 출판을 꼭 하겠다고 말한 뒤 시간이 지나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일을 미뤘다. 그때마다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 역시 ADHD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다. 글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 이정도면 됐다’ 대충 끝내고 절대 다시 안 본다. 출판한다고 할 때마다 다시 글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여유롭게 고칠 수 있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는 시간이다. 그래야지 서로 다른 시간을 넘어 같은 시간 속에서 만날 수 있으니깐.

《제1회 언리미트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에 책을 선보일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글을 읽어보는데 또 수정해야 될 게 많았다. 수정해서 보냈는데 또 틀린데가 보이고 수정해서 보냈는데 또 틀린데가 보이고 끝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선미도 디자인을 수정해서 보냈는데 또 틀린데가 보이고 수정해서 보냈는데 또 틀린데가 보이고 끝이 없었다. 우리는 전화를 하면서 표지에서부터 함께 출발해서, 페이지를 넘기며 산책했다. 산책을 하면서 함께 고치는 과정이 즐거웠다. 산책하는 것 자체가 돌봄이었다. 선미와 나는 아마 앞으로도 실수를 할 거다. 그게 전혀 즐겁지 않다. (그러니깐 계속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에 손이 가지) 하지만 서로를 돌보는 방법을 창작할 것이다. 다음에는 선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어떤 상황인지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한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깐.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왜 그런지 찬찬히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냥 같이 살면 꼭 해야 되는 일이니깐.

“이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요. 선미. 근데 우리 내년도에 또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요건 아직 비밀.(사실 아무도 관심없죠? 데헷)

──── 각주 ────

1) 《매드 어사일럼》: 폐쇄병동에 대항하는 공간. 2025년 10월 17일~10월 23일까지 공연했다. 이때 선미는 당사자의 삶을 듣고 보고 감각하면서 [꾸깃꾸깃 퍼포먼스]의 한글자막을 디자인해줬다. 선미의 디자인은 퍽킹매드하다.(극찬)

2) 미친존재감에서 연습 시작 전에 정신적/신체적 상태를 공유하기 위해서 [오늘의 느낌]을 한다. 또한 걱정되고 신경쓰이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 나누고 질문을 하면서 돌봄을 해준다.

3) [오늘의 느낌]이 끝나고 10분 쉬었다가 [미친 교환일기]를 읽는다. 각자 이름이 적힌 노트를 돌려가면서 가져가 연습 때 미처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편지로 적거나 일기를 쓰면서 서로의 돌봄 역할을 찾아나갔다.

4) 중추신경자극제로 성인 ADHD 치료 약물로 사용되는 약물의 성분이다. 이 약물 성분은 정신자극제로써 신체와 정신을 각성시키고 긴장감을 준다. 특히 과집중을 하고 난 뒤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약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피로가 장난없이 세게 온다.

5) 김민조, 연극평론가, 「춤추는 변수들」, 《웹진 이음》, 2023. 12. 27.

6) “에지페르체시”는 헝가리의 초단편 문학 장르를 뜻합니다. 작가 외르케니 이슈트반에 의해 만들어진 장르이며, 르포르타주,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를 포섭하는 1분 분량의 초단편 문학을 말합니다. 기존에 1쪽프레스에서 1쪽짜리 초단편 소설을 선보인 바 있고, 미디어버스에선 한시간 총서로 1시간 동안 읽을만한 분량의 글들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에지페르체시>는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형식을 본따, 1쪽짜리 초단편 문학/산문을 비정기적으로 리소 형식의 아주 얇은 진(ZINE)으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 2024. 2. 7. 선미가 보내준 메일에 적힌 설명

7) 남연주의 그림책 『발 밑에 있는 건』을 추천해주고 싶다. 꼭 친구 앞에서 소리 내서 읽어야 한다. 마치 영화관에 들어간 기분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