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퀴어의 다수가 연상을 선호한다는 통념은 널리 퍼져 있다. 솔직히 말해 근거 없는 편견은 아니다. 지난 십여 년간 경험과 관측으로 축적된 데이터에 의하면 정말 많은 여성 퀴어가 정말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여러 타입의 연상ex. ‘언니’, ‘중년’, ‘유부’, ‘아줌마’, ‘할머니’을 욕구하고 욕망한다. 특히 트위터현 ‘X’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연상식食’의 자기표현은 두드러진다. 이들 대부분은 열 살 차이 정도는 그냥 기본 설정값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특정 노년 여성 배우들을 향한 이들의 열광적인 애정 표현은 거의 노인 착취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놀리듯이 말하지만 그건 그만큼 ‘연상식’이 여성 퀴어 문화에서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현실에서 세대 차이가 있는 여성 퀴어 커플을 목격하게 되면 우리네 “여성 퀴어 동료”들은 갑자기 돌변하며 페미니즘과 유교를 동시에 들먹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n살 차이는 진짜 정말 결코 아니라는 도덕적 훈계를 쏟아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대체 동성 간의 연애가 괜찮을 이유는 뭘까? 한번 물어나 보고 싶다.
『모녀 사이세요?: 여성 간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에 관하여』는 “여성 퀴어 동료”들을 포함한 대중들의 세대 간 동성연애에 대한 부인, 부정, 비난에 대한 스물다섯 페이지지 짜리 “반박”이다. 이 글에서 강초심은 열네 살 연하의 T와 연애하며 수도 없이 들은 질문—제목처럼, “모녀 사이세요?”—에 대고 이런 질문의 근본에 차마 여성 퀴어조차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이성애 중심적 규범이 자리 잡고 있음을 정확하게, 정성스레 논박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미 “본능적인 층위"에서 이성애적 결합을 성적 매력과 경제적 능력을 교환하는 거래의 형식으로 보고 있다. 세대 간 결합은 바로 이런 현실의 적나라한 진실을 폭로하는 계기이기 때문에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이런 이성애 중심적 규범의 구속에서 비교적 여성 퀴어가 자유롭다 해도 내재화된 여성 혐오와 욕망 검열을 피하기란 또한 어렵다. 이게 본인들도 ‘정상 사회’ 기준에선 문제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나이 차이 커플에는 유독 ‘엄근진’하게 구는 이유다. 이성애 중심적 규범은 물론이고 동성애 중심적 규범 안에서도 최악의 “나쁜 성bad sex”(게일 루빈) 취급받는 세대 간 결합은 그렇기에 강초심에 의해 “이중 퀴어”라 정의된다. “이중 퀴어”는 ①동성애적 결합으로서는 "여성 퀴어 동료"들에게 “적법성”을 의심받고 ②성애적 결합으로서도 “모녀 관계"로 좋을 대로 오인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 부족으로 인해 아예 그 존재 가능성 자체가 폐제되며 그로 인한 ‘이중 부정/부인’, 무엇보다 ‘이중 비가시화’를 경험한다.
이 작은 팸플릿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 바로 이런 명징한 명명에 있다. 강초심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지 않았던 수치와 “후회”를 솔직한, 단단한 언어로 제련하여 세상에 돌려준다. 알다시피 어떤 사랑은 자신을 보호할 논리의 발명을 주체에게 요구한다. (이런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면 유감이다) 그런 논리가 수치와 상실을 극복하게 해주진 못할지라도 그로부터 주체를 살아남게 해줄 수는 있다. ‘비정상’, 비규범, 비주류 사랑을 하는 누구이건 세간의 시선이란 독소를 소화하기 위한 이와 같은 고통스러운 자기 설명의 경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해서 차마 현장에서 곧장 발화되지 못한 되받아쳐 말하기speaking back의 지연된, 축적된 “반박”은 결국 이중 부인/부정을 겪은 연인 T와의 관계에 대한 애도의 수행이자 관계의 증명으로 ‘살아남아’ 존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반’은 물론이고 “여성 퀴어 동료” 커뮤니티에 비판과 성찰을 요구하는 이 글은 무엇보다 러브 레터다. 지난 연인 T와의 사랑에 대한, 서로에게 발견한 차이와 배움에 대한, 그들이 함께 일군 둘만의 세계에 대한. 나는 이와 같이 이미 잃은 대상을 돌보려는 태도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건 ‘연상식' 주류 사회에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연하식’을 고집하는 나의 습관 같은 취향이다.
『모녀 사이세요?: 여성 간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에 관하여』는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섹슈얼리티와 재현의 위계질서를 폭로하며 ‘좋은 성’과 ‘나쁜 성’의 경계를 심문하는 글이다. 실제로 세대 간 결합이란 주제는—이를테면 게일 루빈과 주디스 버틀러가 건드렸듯—아동 성욕과 근친상간의 문제라는 대형 지뢰를 장착하고 있기에 우리는 아마 이 글을 입구로 삼아 굉장히 많은 논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함부로 누군가를 “규범적 프레임”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자는 지극히 단순한 메시지 자체는 점차 보수화되고 ‘정상화’되어 가는 (여성) 퀴어 커뮤니티에 보다 널리 유통돼야 마땅하다 본다.마음 같아서는 강초심의 튼튼하고, 단단하고, 시원스런 이 글을 강제로 모두에게 읽히고 싶다.